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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박원순의 희망탐사 111   Social Designer's Story/박원순의 희망탐사

 

우리 청소년들을 위한 오아시스, 청소년문화공동 체 <품>
- 청소년의 희망을 만드는 축제, 청소년의 미래를 담보하는 청소년공동체 품


면담일시 - 2009년 6월 7일 오후 4시
면담인사 - 이상섭(청소년문화공동체 품 지역문화운동팀)
              서인석(청소년문화기획단 멤버.효문고 3년)
              송성호(청소년문화기획단 멤버 서울북공고 3년)
              김준혁(청소년문화기획단 멤버 경신고3년)
면담장소 - 서울 도봉구 쌍문21동 495-77 송곡빌라 지층



나는 자신의 삶을 기획하는 법을 배웠다

 

이 청년운동가의 경험을 들어보며 오늘날 청소년의 실상과 우리 교육의 문제를 새삼 되돌아본다. 학업에 뒤떨어진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이들은 학교나 학부모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하며 절망의 수렁을 헤메다가 결국 지진아나 낙오자로 비극적인 인생을 살게 된다. 그러나 학업만이 다는 아니지 않는가. 다른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청소년공동체 품이다.

“여기에는 동아리 친구들이 많습니다. 품이 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지요. 자신들의 이야기가 사회와 소통하는 것을 돕는답니다. 주변의 환경들을 돌아보고 지역에서 아이들의 생각이 힘이 되도록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주변에 있는 기성세대를 만나고 설득하고 교사들을 만나 아이들의 가치, 철학을 전달하려고 해요. 대학생들도 청년으로서의 힘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하구요.”

이 곳의 지역문화운동팀에서 일하는 이상섭씨의 설명이다. 그 역시 품의 품에 안겨 청소년시절을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이 곳에서 상근 간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들의 삶을 지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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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지하층에서 꾸는 청소년 천국의 꿈

도봉구 쌍문동의 한 주택가. 한 건물의 지하층에 세들어 있는 청소년공동체 품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퀴퀴한 냄새에 한참동안 적응해야 했다. 이 곳에 아주 오래, 아니 늘 생활해야 하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참 안됐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도대체 20주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유서깊은 단체가 아직도 이런 곳에서 세들어 살아야 한다니 안타깝다. 이들은 무슨 꿈을 꾸며 이 곰팡이냄새와 싸우며 자신들의 열정을 바치고 있단 말인가.

1992년 품의 탄생 - 노래로 세상 바꾸자. 평범한 아이들을 사랑한다.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3학번 동기 심한기, 이준호, 양금석은 유네스코 청년문화원에서 눈이 맞았다. 노래와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공통분모를 가진 세 남자는 대번에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들은 약속을 지켰다. 대학을 졸업한 후 다니던 직장을 버리고 기타를 들고 한국의 아이들을 찾아 나섰고, 1992년이 되어서야 품 청소년놀이문화연구소를 개소했다. 세 청년의 꿈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청소년 복지의 또다른 방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주변의 우려는 그칠 줄 몰랐다. 많이 부딪히고 깨졌다. 청소년과 관련이 있다면 안해본 일이 없었다. 청소년 캠프 위탁사업, 어울마당, 노패품공연, 장애청소년축제, 대학생 및 지도자교육,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처절하게 고민하며 품을 만들어갔다.

심한기. 노래품, 1992년 품 창단~현재ㅣ대표

잘하진 못했지만, Rock Sprit로 무장된 밴드 풀신이며, 청소년기의 특별한 경험이 지금 그를 만든 동기이기도 하다. 20대와 30대를 품에서 보내며, 이젠 품이란 시간 속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참이 되었고, 많은 식구들의 떠남과 시작함을 바라보며 가끔은 품 역사의 무게를 힘겨워 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한번도 한 눈 팔지 않고 품을 지켜가는 대표로 남아있다. 아직도 반바지와 욕지거리를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여유로워지고, 이제는 품이 끝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의 마지막 꿈은 후배들이 끌어가는 품을 지켜보며, 녹색마을 '품속학교'의 웃긴 교장으로 남아 자연에서 아이들과 후배들을 만나며 품 20년사를 집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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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기 대표는 지금 네팔에 가 있다고 한다. 이상섭씨가 품의 심한기 대표를 대표해 고민을 전달해준다. 심대표는 한국의 청소년 사랑은 한국에서만 충분하지 못했나보다. 그는 산을 좋아해 에베레스트를 다니다가 많은 종교가 공존하는 곳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부처와 예수가 어께동무를 하고 있는 그림을 보았다고 한다. 서로 다른 종교가 문제없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그리고 우연찮게 아이들을 만나 그 학교를 찾아갔다. 초등학교, 대학교의 그림이 완전히 꼭 같은 것을 보고 네팔에서의 교육의 획일성을 극복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네팔의 지역사회에 들어가 사업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끝없는 끼와 도전, 실천을 그를 직접 만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지역의 학교 아이들, 노인 들을 많이 만난다. 자기 청소년기가 되돌아보였다고 한다. 사고치는 꼴통들에게도 관심을 가진다. 엘리트라고 하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간에 있는 애들도 관심을 못받는다. 어느 강의를 듣다가 평범한 친구들도 맣이 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도 일반 보통의 청소년들이다. 문화와 예술이라는 것이 너무 큰데 서로 다음이 인정되고 다른 삶을 바라보는 과정을 문화활동을 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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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들과 공모에 의해 운영되는 단체

1994년 재단에 편입되어 나름의 안정된 사업과 운영을 바랬던 품은, 재단의 재정상황이 악화되면서 또 한 번의 고비를 겪게 됩니다.
1998년 2월 7일 품의 경제적인 위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하여 자원활동가 30여명이 머리를 맞대게 되었고, 품 최초의 후원조직 '두레품'을 결성한 것이 주주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품의 가치와 철학에 동참하며, 실천적 삶을 함께 하는 '동반자'를 배가한다'는 의미에서 '주주운동'이라 하였습니다. 2008년 12월 현재 품에는 311명의 주주가 있습니다.

문화예술이 척박한 대한민국 땅에서 품이 잘 될리는 만무하다. 더구나 청소년단체에 큰 후원이 답지할 리도 없다. 근 20년을 살아남은 것이 신기할 뿐이다.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은 그래도 지난 20년동안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큰 후원은 없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두가지 방법이다. 하나는 주주모집과 공모사업에 응모하여 사업을 벌리는 길이다.

그 중의 주주모집은 참 신선한 방법이다. 일반 후원회원과 다를 바는 없다. 그러나 주식회사에서 주주가 주인이듯이 청소년공동체 품의 주인도 이 주주인 것이다. 주인인 주주가 운영에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주주가 되는 길은 생각밖으로 간단하다. 월회비 1만원을 내거나 연회비 10만원을 내면 된다. 그런데 그 주주의 지위와 혜택이 장난이 아니다.

 

이런 후원회원 주주에게 자신의 자녀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것이 눈에 띈다. 이렇게 훌륭한 사업이 좀 더 알려지고 그 청소년 캠프나 축제, 동아리, 문화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학부모들에게 공지되면 주주들이 구름같이 몰려들텐에 품의 마케팅 역량이 부족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약속은 마지막 구절이다. “문화가 가난한 아이들, 꿈을 잃은 아이들의 소중한 품이 될 수 있다”는 문장에 이르면 감동이 밀려온다.

그 다음으로 품이 재정을 마련하는 방법은 특정 사업의 프로포절을 내서 사업비를 만드는 일이다. 물론 이것이 잘 안되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 공모사업에 응모하는데 늘 불안하기만 하다. 일은 하고 싶고 놓치기 싫은데 당첨은 자신의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다.

한 때 일암청소년육성재단(청소년과사람사랑재단으로 개칭)에 편입된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다시 독립했다. 그 재단도 사업이 어려워졌고 동시에 서로 철학과 사업을 공유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10년째 하는 청소년 축제, 아이들의 일상을 바꾼다

청소년공동체 품의 활동반경은 도봉구. 강북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사실 값싼 지역을 찾아오다 보니 쌍문동까지 흘러들어왔다고 한다. 다만 품이 여기 있다 보니 이 지역의 아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자연히 이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 많아진 것 뿐이다. 품의 주력사업은 역시 문화를 통한 청소년들의 대안광장만들기이다.

품의 역사를 통해 보면 한국사회 청소년복지의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저 평범한' 보통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문화적 접근을 고민하던 초기시절부터, 문화를 통한 운동을 고민하는 현재시점까지 청소년, 문화전문가, 교사, 청소년활동가, 예비지도자는 물론, 학계와 현장을 연결하여 청소년활동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의 끈을 놓치 않고 있다. 품이 아이들과 대화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문화예술이라는 매개, 특히 연극과 전통, 음악이라는 고리를 통해 아이들을 만나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아이들. 그들이 설 무대를 만들어주고 경쟁 아닌 어울림으로 참가자 모두가 흥겹고 신나는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 교류의 장으로서 품이 맨 먼저 고민하고 실천해 온 것이 바로 축제이다. 입시에 찌들고 학교와 가정에서 소외된 아이들에게 일상과 신명, 공동체, 축제라는 문화는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10년째 이어가고 있는 청소년축제를 통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다른 친구들, 나아가 사회와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품은 이러한 일회적 이벤트로서의 축제를 주최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 있다.

축제를 통해 아이들과 즐겁게 잘 노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왔던 품은, 10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 아이들의 현실을 지켜보며 새로운 고민을 시작한다. 일상의 축제라는 말이 무색하게, 축제가 끝나면 아이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여전히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였다. 축제의 감동이 아이들의 일상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근본적인 환경을 바꾸는 일을 하지 못했다는 처절한 반성으로부터 운동을 생각한다. 꿈을 잃은 아이들, 꿈이 없는 아이들, 팍팍해져가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지키고자 애쓰는 아이들. 그들의 든든한 빽이 되어주는 일, 그러한 빽을 한 수백 개쯤 전파하는 일. 그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힘주고, 그 이야기의 아리를 만드는 일. 그것의 품의 역할이다. 그것이 품의 운동이다.

지역사회에 대한 청소년들의 문화 공헌
- 일회에서 지속적으로, 단위 프로그램에서 축제 전체 판의 기획으로

청소년이 이 축제를 기획하고 추진하고 만들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프로그램 하나를 기획하였다. 아이들과 노는 놀이가 그것이다. 그런 기획을 하다가 문화기획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축제를 넘어선 것이다. 누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서로 진지하게 토론하여 그 결과 기획안이 만들어진다.

이번 축제의 타이틀이 추락기였다. 가을추, 즐거운 락이다. 10년째인데 평상시에 자기가 하던 것을 하는 것이다. 추수가 계속 농사지은 결과물이지 않은가. 처음에는 어른들이 기획하다가 3년차에는 판 자체를 아이들이 기획하게 되었다. 예산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진행을 모두 청소년들이 진행한다. 이벤트로서의 일회용이아니라 한달에 한번씩 강북구의 문화존사업과 관련하여 매달 노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밴드하는 친구, 노래하는 동아리들이 품과 이 지역사회 안에 있다. 이 동아리들이 동네사람들에게 재미있는 놀이를 보여드리자고 하여 수유역장님에게 제안을 하였다. 그리하여 수유역에서 거리공연을 하게 되었다. 또한 지역단체에 제안하여 한신대 운동장에서 평화통일에 관한 공연도 했다. 가족평화장터라는 지역단체 연합행사에 청소년들이 참가하기도 하였다. 단위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보다는 축제의 전체 판을 함께 같이 기획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아이들

내 옆 자리에 앉은 세 고등학생들은 <세 개> 문화기획팀에 소속되어 있다. 처음에는 6명으로 시작했다. 모두 친구였다. 품에 놀러오다가 간사들이 같이 축제 기획해 보지 않느냐고 꼬셔서 할 것도 없어 만들었다고 한다. 이름이 처음에는 그래서 <여섯 개>였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친구들이 이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바스킨 라빈스 한통을 사가지고 먹으면서 스푼을 부러뜨렸다. 쇠숟가락을 가지고 와서 서로 먹겠다고 싸웠다. 여섯명이 서로 먹겠다고 싸우는 모습이 모두 개같다고 해서 <여섯 개>로 이름이 정해진 것이다. 그런데 세 명이 빠져나가 서포터즈로 되면서 D이들이 별도의 <개밥그릇>을 조직하였다. <개밥그릇>의 한 멤버였던 김현중이는 청소년문화카페인 <페페>를 강북중학교 앞에 만들었다. 지금은 <세 개>만 남아 있다. 개는 3일치 밥을 주고 가면 3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하루에 다 먹어버린다. 순간이 즐거워야겠다. 그래서 순간을 즐기는 개가 되어보자고 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어른들이 듣기에는 좀 어색하지만 아이들의 상상력이 기발하다. 지금 고등학교 3학년생들인 서인석, 송성호, 김준혁 세 ‘개’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기획을 하면서 배운 것은?

- 학교공부와 거리가 멀다. 친구들처럼 학교나 학원 다니지 않고 품에 오가면서 학교교육이 너무 일방적이고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문학교실을 만들어 공부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품의 사람들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여기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기획작업을 하면서 배운 것이다. 나 자신을 알게 되었다. 사람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어떻게 이야기하고 사회에 대한 고민, 살아가는 고민을 많이 나누게 되었다. 내가 어떤 청소년이 되어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되었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이다. 답을 찾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다. 한번에 갑자기 문득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은 힘들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들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본다.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 친구들의 반응은?

-부모님은 이 책 발간회때 초대해서 이런 글이 나왔다고 보여드렸다. 친구들은 축제할 때 초대해서 같이 놀았다. 서로 잘 어울리게 되었다. 학교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자고 공부 잘 안하니까 불량학생들로 본다. 여기서 늦게까지 있다 보면 학교 수업시간에는 아무래도 등한시한다. 학교 선생님께도 이런 작업을 이야기했더니 여기서 활동하는 시도 자체를 잘 이해못하고 왜 그렇게 힘들게 살려고 하느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활동하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님들은 중학교때부터 이미 우리가 이렇게 활동해 왔기 때문에 이해하신다.

지금 고3이라면 대학입시나 취업을 준비해야 할 때인데?

-아직은 10대이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이해안되는 것도 있다. 공부도 때가 있다는 말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것이 이해가 잘 안된다. 지금 하는 일이 마지막 선택이 아니다. 이 선택을 하더라도 나중에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19살의 나이나 고3이기 때문에 취직이나 대학을 가야하는 때인지 잘 모르겠다.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다. 스스로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까지 이런 일을 계속하고 싶다. 현재 인문학교실을 하고 있는데 이 공부를 하면서 또는 그것이 끝난 뒤에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다. 기존의 관념대로 지금 당장 선택해야 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인문학교를 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삶을 선택하는 경험을 할 때 자신의 삶을 살 수 가 있다고 본다.

그래도 부모님과의 소통이 중요한데?

-생각의 힘이 크다. 고3인데 이런 이야기하면 현실과 거리가 멀게 사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열아홉의 망상이나 어리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른들이 우리를 바라보게 된 데에는 그 분 나름대로의 사연이나 배경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와 같은 생각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요즘 엄마에게 가능하면 대화를 하려 하고 있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려 한다.

우리는 보통 친구들과 다르다. 학교 쉬러 간다. 10대가 추구하는 즐거움이 있다. 남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들어오는 여자를 놀래키는 따위가 그것이다. 그런 일을 하는것이 즐겁기는 하다.

끼많은 아이들이다. 의외로 진지하고 성실하고 교양이 풍부하다. 나름대로 청소년기를 치열하게 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외관상으로만 보면 그 학부모나 교사들에게는 다분히 불량기가 다분한 청소년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튀는 젊음, 반항의 시기를 가져보지 못한 것에 비하면 이 아이들은 훨씬 자유분방하고 훌륭한 사고와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이다.

10년후
- 이 아이들이 자라나서?

“10년이 되니까 이 아이들이 자라나서 청년이 된다. 동네에서 활동하는 청년이 많다. 나 자신도 초등학교 다닐 때 품이 주최하는 캠프에 참여하였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여러 가지 동아리 활동을 하였다. 성인이 되어 원래 꿈은 국어학교 선생이었다. 오히려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사회복지를 전공하여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 내 자신이 품의 캠프에 참여하였다가 지금은 품에 일자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어 동네의 작업자로., 품의 강사로 오는 친구들도 있다.”

이상섭 간사의 이야기처럼 품에 온 아이들은 참으로 귀한 문화활동을 접하고 좋은 선생들과의 접촉에 성공한 아이들이다. 그런 점에서 품은 잘못 일탈할만한 아이들에게 문화와 소통, 가능성과 미래의 오아시스가 아닐 수 없다.

대안대학을 고민한다

이 아이들이 자라니까 대안대학을 고민하게 된다. 박창구 선생이라고 공공미술에 계시는 아티스트가 있는데 이 분이 이 성장하는 아이들을 품는 대학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제안하였다고 한다. 품속학교라는 이름을 그 분이 썼다. 단발적인 교육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교육과 실천이 함께 하는 단상을 말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심한기 대표나 직원들도 좀 더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추진할까 고민중이다. 그런데 더 절박한 것은 공간탈출모금이다. 여기 지하라서 오래 있다 보면 몸이 안좋아진다. 이렇게 공간에 대한 고민이 깊은데 내가 도와줄 길이 없다.

과정을 알아달라
-축제의 수치가 아니라 축제기획을 한 지역 아이들의 성장을 생각하라

정부, 지방정부, 사회기관에게 부탁하거나 제안할 말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과정중심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구라든지 서울시 공모사업의 경우 계량화된 수치를 요구한다. 축제에 몇 명 오는 것이 결과가 된다. 그 축제를 어떤 과정을 통해 기획되고 추진되었는지 내용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 지역의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사람 인원수로 그 축제를 재단하고 그 과정의 땀과 노력을 무시되는 것이 조금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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